화요일 오후 2시.
소리가 먼저 들렸다. 철근이 부딪히는 소리. 그다음 비명.
3층 자재 적재대가 무너졌다. 시멘트 포대 6개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영수가 밑에 있었다.
진호가 달려갔다. 10미터. 발이 얼어붙은 바닥 위를 미끄러지듯 뛰었다.
영수는 엎드려 있었다. 포대 두 개가 등 위에 올라가 있었다. 40킬로짜리.
진호가 포대를 밀었다. 다른 인부 두 명이 달려와서 함께 들어올렸다.
영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얼굴이 흙투성이였다.
영수가 일어나려 했다.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진호가 어깨를 잡았다.
영수가 입을 다물었다. 진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구급차가 15분 만에 왔다. 영수는 들것에 실려 갔다. 진호는 구급차 뒤를 봤다.
허리를 두드리던 손. 습관처럼 잡던 허리. — 이미 아팠던 거였다.
저녁. 병원.
영수는 요추 3-4번 추간판 탈출이었다. 한 달 입원. 공사장 복귀 불가.
진호는 병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영수가 링거를 맞고 누워 있었다.
영수가 천장을 봤다. 한참을 보다가 말했다.
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호가 고개를 숙였다.
영수가 링거 줄을 만지작거렸다.
진호는 병실 창문을 봤다. 밖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밤 10시. 고시원.
단말기를 켰다.
유감입니다. 기계의 한 줄이었다. 그런데 — 다른 말이 이어졌다.
진호는 화면을 봤다. 보조 장비. 78%.
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화면을 보고 있었다.
영수의 허리. 31%. 보조 장비가 있으면 78%.
숫자가 머릿속에 박혔다.
19페이지를 썼다. 새벽 1시.
그런데 페이지를 넘기면서 영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천장을 보던 눈. "올해 55야. 허리 나가면 끝이야."
보고서를 닫고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전화기를 꺼냈다. 태식 번호를 봤다.
밤 1시에 전화하면 미친놈이었다. 메시지를 보냈다.
'형, 진호입니다. 시간 되시면 한번 뵙고 싶습니다.'
보내고 나서 화면을 봤다. 읽음 표시가 뜨지 않았다. 당연했다. 밤 1시니까.
그런데 — 1분 후에 답이 왔다.
'토요일. 같은 데서.'
진호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이 사람은 왜 1시에 깨어 있는 걸까.
아니면 —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토요일. 같은 감자탕집. 같은 자리.
태식이 먼저 와 있었다. 지난번처럼. 셔츠에 슬랙스. 변한 건 없었다.
진호가 앉았다. 오늘은 패딩 말고 점퍼를 입고 왔다. 깨끗한 걸로.
태식이 영수를 알고 있었다. 진호는 그걸 처음 알았다.
태식이 따랐다. 진호가 받았다. 한 잔을 비웠다.
지난번에는 탐색이었다. 오늘은 — 달랐다. 진호는 결심하고 온 거였다.
태식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소주잔만 들고 있었다.
진호가 말하기 시작했다.
글로벌트레이드. 서초동 12층. 직원 43명. 연매출 200억. 15년.
동남아 수출 프로젝트. 포괄위임장. 최승재.
이사회 기습. 해임. 횡령 무고. 자산 동결.
이혼. 딸. 법정에서 놓은 손.
고시원. 인력사무소. 일당 12만 원.
진호는 사실만 말했다. 감정을 넣지 않았다. 숫자와 날짜로.
태식은 한마디도 안 했다. 소주만 마셨다. 진호가 말하는 동안 세 잔을 비웠다.
20분이 걸렸다. 15년을 20분에 압축했다.
끝이었다. 진호가 입을 다물었다.
식당에 라디오 소리가 흘렀다. 트로트였다. 감자탕이 보글거렸다.
태식이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태식이 따랐다. 진호가 받았다.
진호의 손이 소주잔 위에서 멈췄다.
진호가 고개를 들었다. 태식의 눈이 진호를 보고 있었다. 읽히지 않던 눈이 — 지금은 읽혔다.
믿음이었다. 아직 근거는 없는. 하지만 분명한.
소주 네 잔째.
태식이 처음으로 길게 말했다.
태식이 소주잔을 돌렸다.
진호는 듣기만 했다.
태식이 소주잔을 내려놓았다.
태식의 입버릇이었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 하지만 오늘은 그 뒤에 다른 말이 왔다.
진호는 소주잔을 보고 있었다. 잔에 비친 형광등이 흔들렸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진호는 그걸 느꼈다. 소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소주 때문이 아니었다.
밤 11시. 고시원.
단말기를 켰다.
화면이 0.5초간 멈췄다. 평소에 없던 지연이었다.
진호는 웃었다. 고시원에서 혼자 웃은 건 처음이었다.
21페이지를 열었다. 9페이지가 남았다.
16일 안에 끝내야 했다. 아니 — 끝내고 싶었다.
태식에게 보여줄 보고서. 30장.
손이 움직였다. 낮에 철근을 잡던 손이. 밤에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속도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