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기 29-30화
다크앰비언트
EPISODE 29
제29화
카페. 밤. 두 남자가 마주 앉아 있다. 한 명은 양복. 한 명은 캐주얼. 테이블 위에 커피. 분위기가 차갑다.

7월. 최승재에게서 연락이 왔다.

번호가 바뀌어 있었다. 모르는 번호. 받았더니 — 그 목소리였다.

최승재
"진호 씨~ 오래간만이야."

능글맞은 톤. 변하지 않았다.

박진호
"용건만."
최승재
"차 한잔 하자. 할 얘기가 있어."

끊으려 했다. 하지만 — 김과장이 말한 게 떠올랐다. 월급이 밀리고 있다. 36명.

만나기로 했다.

* * *

강남 카페. 저녁 8시.

승재는 양복을 입고 있었다. 깔끔했다. 하지만 — 얼굴에 그림자가 있었다. 이전에 없던.

최승재
"잘 지내? 사업 다시 한다며?"
박진호
"용건."
최승재
"급하네. 변한 건 없구나."

승재가 커피를 마셨다.

최승재
"솔직히 말할게. 글로벌트레이드가 힘들어. 동남아가 다 빠졌어."
박진호
"알고 있어."
최승재
"그래서 — 돌아오면 안 돼? 대표는 니가 해. 지분도 다시 조정하고."

진호는 승재를 봤다. 5년 동안 같이 일한 얼굴. 이사회에서 손을 들어 해임시킨 얼굴.

박진호
"안 돌아가."
최승재
"왜? 아직 화나 있어?"
박진호
"화는 없어. 관심이 없어."

승재의 표정이 바뀌었다. 미세하게. 능글맞은 웃음이 사라졌다.

최승재
"진호 씨. SEAN이라는 거 — 내가 좀 알아봤어."

진호의 눈이 좁아졌다.

최승재
"BizSpread? 잘 되고 있더라. 근데 니가 예전에 내 거래처 중에 — 한솔로지스 있었잖아. 거기 니가 들어갔더라?"
박진호
"그건 태식 형 인맥이야. 형 거래처 아니야."
최승재
"그래? 근데 다른 데도 좀 겹치더라고."

경고였다. '내 영역에 손 대지 마'라는.

박진호
"승재야."

진호가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존대 없이.

박진호
"내가 돌아가는 일은 없어. 그리고 — 네 거래처 건드리는 것도 아니야. 나는 내 사업을 하고 있어."
최승재
"..."
박진호
"직원 월급이나 제때 줘. 36명이 기다리고 있어."

진호가 일어났다.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카페를 나왔다.

밖에 여름 바람이 불었다. 등 뒤에서 승재의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보지 않았다.

* * *

사무실로 돌아왔다. 단말기를 켰다.

박진호
"팀장아."
◈ AI TEAM LEADER 네, CEO.
박진호
"최승재가 우리 사업을 알아봤어. 거래처를 건드릴 수도 있어."
◈ AI TEAM LEADER 최승재의 현재 영향력을 분석합니다. ▶ 글로벌트레이드 신용등급: C+ ▶ 동남아 거래처: 전량 이탈 ▶ 국내 거래처: 잔존 8곳 ▶ 재무 상태: 적자 지속 직접적 위협 수준: 낮음 간접적 방해(악소문, 거래처 압박): 중간
박진호
"대응은?"
◈ AI TEAM LEADER CEO, 최승재의 약점은 재무입니다. 현재 포괄위임장 날짜 조작 건이 디지털 포렌식으로 확인된 상태입니다. 필요하다면 — 법적 대응이 가능합니다.
박진호
"아직이야. 그건 마지막 카드야."
◈ AI TEAM LEADER 이해합니다. 모니터링을 유지하겠습니다.

진호는 단말기를 닫았다. 의자에 기대서 천장을 봤다.

승재. 한현우. 두 개의 위협이 동시에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진호에게도 — 태식이 있었다. 민준이 있었다. 영수가 있었다. 팀장이 있었다.

그리고 — 아직 이름을 붙이지 않은 무언가가 하나 더 있었다. 관악구 역 앞 카페에.

진호는 전화기를 봤다. 하은의 번호는 없었다. 물어본 적이 없으니까.

내일 카페에 가면 — 물어볼까.

생각만 하고 잠들었다.

EPISODE 30
제30화
사무실. 낮. 4명이 모여 있다. 화이트보드에 '외부 AI 공급' 구조도. 분위기가 밝다.

8월.

SEAN AI 연구소. 직원 4명. 사무실 30평. 월 매출 2,800만 원.

8개월 전, 진호의 전 재산은 12,000원이었다.

◈ AI TEAM LEADER — QUARTERLY REPORT SEAN AI 연구소 8개월 실적: ▶ BizSpread 구독: 102곳 ▶ 컨설팅: 누적 32건 ▶ 월 수익: 2,800만 원 ▶ 누적 수익: 1억 1,200만 원 ▶ 직원: 4명 (CEO, COO, 개발, 운영) CEO 레벨: Lv.3 경탄기 → 학습기 진입

구독 100곳을 넘었다. 한현우의 비즈닥터는 40곳에서 멈춰 있었다. 3개월 무료가 끝나자 — 정확도 차이가 드러났다. 12곳이 SEAN으로 돌아왔다.

태식이 말했다.

강태식
"진호야. 시간이 우리 편이었네."
* * *

외부 AI 공급 첫 계약.

중견 물류회사 '대한익스프레스.' 직원 200명. 연매출 500억.

BizSpread를 쓰는 게 아니라 — 대한익스프레스의 자체 시스템 안에 SEAN의 분석 엔진을 넣는 구조.

태식이 문을 열었다. 진호가 설명했다. 민준이 기술 시연을 했다.

대한익스프레스대표
"이거 우리 시스템에 붙이면 — 월 물류비 얼마나 줄어요?"
박진호
"시뮬레이션 결과 18% 절감. 연간 약 9억 원입니다."
대한익스프레스대표
"계약금은?"
박진호
"초기 구축 3,000만 원. 월 유지보수 500만 원."

대표가 옆에 앉은 이사를 봤다. 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익스프레스대표
"합시다."

3,000만 원 + 월 500만 원. 단일 계약 최대 규모.

회의실을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태식이 진호 어깨를 잡았다.

강태식
"야."
박진호
"네."
강태식
"공사장에서 만날 때 생각나? 그때 내가 했던 말."
박진호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하셨죠."
강태식
"니가 진짜 바꾸고 있어."

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 * *

밤. 사무실.

혼자 남았다.

단말기를 켰다. 파란 빛이 어둠을 갈랐다.

박진호
"팀장아."
◈ AI TEAM LEADER 네, CEO.
박진호
"8개월이다."
◈ AI TEAM LEADER 네. 미션 시작 후 8개월입니다.
박진호
"처음에 생존 확률 몇이라고 했었지?"
◈ AI TEAM LEADER CEO 초기 분석 당시 사업 성공 확률: 4.7% 현재 재산정 확률: 38.2%
박진호
"4.7에서 38. 아직 반도 안 됐네."
◈ AI TEAM LEADER 하지만 8개월 전과는 다릅니다. 8개월 전: CEO 혼자, 자산 12,000원 현재: 팀 4명, 월 매출 2,800만 원, 고객 102곳 CEO.
박진호
"응."
◈ AI TEAM LEADER 잘하고 계십니다.

진호는 웃었다. 기계가 "잘하고 있다"고 했다.

창밖을 봤다. 구로구 밤거리. 가로등 불빛. 여름 바람.

12,000원에서 시작했다. 8개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하지만 — 방향은 맞았다. 태식이 처음 한 말. 지금도 맞았다.

단말기를 닫으려는데 — 화면이 0.2초간 깜빡였다. 이번에는 텍스트가 아니었다. 지도 같았다. 세계 지도. 점이 찍혀 있었다. 서울, 도쿄, 샌프란시스코.

눈을 비볐다. 사라져 있었다.

박진호
"...팀장아. 지금 뭐 떴어?"
◈ AI TEAM LEADER 화면 이상은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진호는 단말기를 한참 봤다. 파란 빛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됐어. 자자."

단말기를 닫았다. 사무실을 나섰다.

여름 밤이었다. 바람이 따뜻했다.

8개월 전 12월의 바람은 뺨을 갈겼다. 8월의 바람은 — 등을 밀어줬다.

다음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진호는 걸었다. 앞으로.

제30화 끝

제31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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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N WORLD ·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