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최승재에게서 연락이 왔다.
번호가 바뀌어 있었다. 모르는 번호. 받았더니 — 그 목소리였다.
능글맞은 톤. 변하지 않았다.
끊으려 했다. 하지만 — 김과장이 말한 게 떠올랐다. 월급이 밀리고 있다. 36명.
만나기로 했다.
강남 카페. 저녁 8시.
승재는 양복을 입고 있었다. 깔끔했다. 하지만 — 얼굴에 그림자가 있었다. 이전에 없던.
승재가 커피를 마셨다.
진호는 승재를 봤다. 5년 동안 같이 일한 얼굴. 이사회에서 손을 들어 해임시킨 얼굴.
승재의 표정이 바뀌었다. 미세하게. 능글맞은 웃음이 사라졌다.
진호의 눈이 좁아졌다.
경고였다. '내 영역에 손 대지 마'라는.
진호가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존대 없이.
진호가 일어났다.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카페를 나왔다.
밖에 여름 바람이 불었다. 등 뒤에서 승재의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보지 않았다.
사무실로 돌아왔다. 단말기를 켰다.
진호는 단말기를 닫았다. 의자에 기대서 천장을 봤다.
승재. 한현우. 두 개의 위협이 동시에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진호에게도 — 태식이 있었다. 민준이 있었다. 영수가 있었다. 팀장이 있었다.
그리고 — 아직 이름을 붙이지 않은 무언가가 하나 더 있었다. 관악구 역 앞 카페에.
진호는 전화기를 봤다. 하은의 번호는 없었다. 물어본 적이 없으니까.
내일 카페에 가면 — 물어볼까.
생각만 하고 잠들었다.
8월.
SEAN AI 연구소. 직원 4명. 사무실 30평. 월 매출 2,800만 원.
8개월 전, 진호의 전 재산은 12,000원이었다.
구독 100곳을 넘었다. 한현우의 비즈닥터는 40곳에서 멈춰 있었다. 3개월 무료가 끝나자 — 정확도 차이가 드러났다. 12곳이 SEAN으로 돌아왔다.
태식이 말했다.
외부 AI 공급 첫 계약.
중견 물류회사 '대한익스프레스.' 직원 200명. 연매출 500억.
BizSpread를 쓰는 게 아니라 — 대한익스프레스의 자체 시스템 안에 SEAN의 분석 엔진을 넣는 구조.
태식이 문을 열었다. 진호가 설명했다. 민준이 기술 시연을 했다.
대표가 옆에 앉은 이사를 봤다. 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3,000만 원 + 월 500만 원. 단일 계약 최대 규모.
회의실을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태식이 진호 어깨를 잡았다.
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밤. 사무실.
혼자 남았다.
단말기를 켰다. 파란 빛이 어둠을 갈랐다.
진호는 웃었다. 기계가 "잘하고 있다"고 했다.
창밖을 봤다. 구로구 밤거리. 가로등 불빛. 여름 바람.
12,000원에서 시작했다. 8개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하지만 — 방향은 맞았다. 태식이 처음 한 말. 지금도 맞았다.
단말기를 닫으려는데 — 화면이 0.2초간 깜빡였다. 이번에는 텍스트가 아니었다. 지도 같았다. 세계 지도. 점이 찍혀 있었다. 서울, 도쿄, 샌프란시스코.
눈을 비볐다. 사라져 있었다.
진호는 단말기를 한참 봤다. 파란 빛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됐어. 자자."
단말기를 닫았다. 사무실을 나섰다.
여름 밤이었다. 바람이 따뜻했다.
8개월 전 12월의 바람은 뺨을 갈겼다. 8월의 바람은 — 등을 밀어줬다.
다음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진호는 걸었다.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