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기 31-32화
다크앰비언트
EPISODE 31
제31화
사무실. 아침. 진호가 단말기 앞에 앉아 있다. 화면에 BizSpread 대시보드. 옆에 커피.

9월 첫째 주.

대한익스프레스 계약이 뉴스레터에 실렸다. 'AI 스타트업 SEAN, 중견 물류사와 기술 공급 계약 체결.'

기사는 세 줄이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세 줄이면 충분했다.

화요일 오전. 진호의 전화가 울렸다.

박진호
"네, SEAN AI 연구소 박진호입니다."
김대표
"아, 박 대표님. 저 서진테크 김 대표인데요."

서진테크. BizSpread 초기 고객. 월 50만 원 구독. 진호가 직접 세팅해준 곳이었다.

김대표
"다름이 아니라... 이번 달로 해지하려고요."
박진호
"해지요? 시스템 문제가 있으셨나요?"
김대표
"아뇨, 시스템은 좋아요. 근데... 저도 좀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진호의 손이 멈췄다.

박진호
"무슨 얘기를 들으신 건가요."
김대표
"아... 그냥 업계에서 좀. 박 대표님 전 회사 일이. 옛날에 직원들 월급도 못 줬다든가, 그런."

직원 월급을 못 준 건 승재였다. 진호가 아니라.

박진호
"김 대표님. 글로벌트레이드에서 제가 해임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월급 문제는 제가 나온 이후에 생긴 겁니다."
김대표
"아... 네. 근데 주변에서 자꾸 그러니까. 죄송합니다."

전화가 끊겼다. 진호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오전 10시. 두 번째 전화.

이과장
"박 대표님, 저 한솔로지스 이 과장입니다. 상무님이 다음 달 계약 갱신을 보류하래요."
박진호
"이유가 뭡니까."
이과장
"저도 잘... 윗선에서 결정한 거라."

세 번째는 전화가 아니었다. 메일이었다. 신규 미팅을 잡아둔 IT 유통사에서 왔다.

'일정 조율이 어려워 미팅을 취소합니다.'

하루에 세 건. 우연이 아니었다.

* * *
사무실. 오후. 진호가 의자에 앉아 천장을 보고 있다. 단말기 파란 빛.

오후 3시. 사무실에 진호 혼자 남았다. 태식은 외부 미팅. 민준은 서버실.

단말기를 켰다.

박진호
"팀장아."
◈ AI TEAM LEADER 네, CEO.
박진호
"오늘 해지 1건, 갱신 보류 1건, 미팅 취소 1건. 전부 아침에 터졌어."
◈ AI TEAM LEADER 패턴을 분석합니다. ▶ 서진테크 해지: 9월 1일 10:03 ▶ 한솔로지스 보류: 9월 1일 10:27 ▶ IT유통사 취소: 9월 1일 10:45 세 건의 시간 간격이 24분, 18분. 동시다발적 의사결정 → 외부 영향 확률 94%
박진호
"최승재."
◈ AI TEAM LEADER CEO의 판단에 동의합니다. 최승재의 잔존 인맥 분석: ▶ 한국무역협회 회원: 활성 ▶ 서초 CEO 포럼: 활성 ▶ 수출입 업종 소모임: 3곳 이 채널을 통해 SEAN 관련 부정적 정보가 유통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박진호
"증거는?"
◈ AI TEAM LEADER 직접적 증거 확보: 불가 간접 정황: ▶ 해지/보류 사유가 '시스템 불만'이 아닌 '평판' ▶ 세 곳 모두 최승재의 기존 영업 반경 내 기업 ▶ 시간대 집중 → 특정 시점에 일괄 연락이 돌았음을 시사

진호는 의자 등받이를 밀었다. 삐걱 소리가 났다.

분식회계 카드가 있었다. 꺼내면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 아직이었다. 그건 진짜 위기에 쓸 카드였다. 지금은 모기 잡겠다고 대포를 쏘는 꼴이었다.

박진호
"팀장아. 우리 현재 고객 중에 최승재 인맥권에 있는 곳이 몇이야?"
◈ AI TEAM LEADER BizSpread 구독 102곳 중 최승재 영향권 추정: 14곳 ▶ 고위험(직접 인맥): 5곳 ▶ 중위험(간접 연결): 9곳 ▶ 나머지 88곳: 영향 범위 밖
박진호
"14곳."

전체의 14%. 매출로 치면 월 400만 원 정도. 잃으면 아프지만 — 죽지는 않았다.

문제는 매출이 아니었다. 소문이었다. 소문은 인맥권 밖으로도 퍼졌다.

* * *

저녁 7시. 태식이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표정이 달랐다. 평소의 차분함이 없었다.

사무실 입구. 태식이 서류 가방을 내려놓는다. 표정이 굳어 있다. 진호가 의자에서 돌아본다.
강태식
"진호야."
박진호
"형, 무슨 일 있었어요?"

태식이 서류 가방을 내려놓았다. 의자를 끌어서 진호 앞에 앉았다.

강태식
"오늘 세 군데 갔어. 두 군데에서 같은 소리를 들었다."
박진호
"뭐라던데요."
강태식
"SEAN 대표가 전 회사에서 횡령으로 잘렸다더라. 직원 월급 떼먹고 도망갔다더라."

횡령.

진호의 주먹이 쥐어졌다. 해임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횡령은 — 그건 거짓이었다.

박진호
"형. 그건—"
강태식
"알아. 사실이 아닌 건 나도 안다."

태식의 눈이 달랐다. 화가 나 있었다. 하지만 진호에게가 아니었다.

강태식
"누가 이런 소문을 돌리고 있는 거야?"
박진호
"최승재."
강태식
"누구?"
박진호
"글로벌트레이드. 내 전 회사. 나를 해임시킨 사람이에요."

태식이 진호를 봤다. 3초.

강태식
"그 새끼가 왜?"

태식의 말투가 바뀌었다. '사람'에서 '새끼'로. 30년 영업맨이 쓰지 않는 단어였다.

박진호
"지난달에 만났어요. 돌아오라고 하더라. 거절했더니 이러는 거예요."
강태식
"만났어? 왜 혼자 만나?"
박진호
"제 과거니까요."
강태식
"아니야."

태식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화가 날수록 목소리가 낮아지는 사람이었다.

강태식
"니 과거가 아니라 SEAN의 현재야. 우리 거래처가 빠지고 있잖아."

맞는 말이었다. 진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강태식
"그 새끼 연락처 줘."
박진호
"형, 직접 나서지 마세요. 이건—"
강태식
"이 새끼가 누구야."

태식이 일어섰다. 서류 가방을 다시 들었다.

강태식
"횡령이라고? 내가 보증하는 사람을 사기꾼이라고?"

태식이 문을 열었다.

강태식
"진호야. 내일부터 내가 돈다."

문이 닫혔다.

사무실에 다시 혼자가 됐다.

┌─────────────────────────────────────┐ │ ◈ STATUS UPDATE │ │─────────────────────────────────────│ │ [위기] 빌런 퀘스트 발생 │ │ 대상: 최승재 │ │ 위협 유형: 평판 공격 │ │ 현재 피해: 고객 3곳 이탈/보류 │ │ 잠재 피해: 14곳 추가 이탈 가능 │ │ │ │ ◈ 대응 전략 수립이 필요합니다 │ └─────────────────────────────────────┘

진호는 시스템 창을 닫지 않았다.

승재. 해임당한 날, 박스 하나 들고 나왔다.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만 이천 원을 세었다. 그때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지금은 달랐다. 팀이 있었다. 태식이 있었다. 하지만 — 태식 혼자 싸우게 둘 수는 없었다.

단말기를 다시 켰다.

박진호
"팀장아. 최승재 대응 시나리오 3개 만들어."
◈ AI TEAM LEADER 작업을 시작합니다, CEO.

밤이 깊었다. 사무실 형광등이 지직거렸다.

태식이 한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니 과거가 아니라 SEAN의 현재야.'

맞았다. 이건 진호 혼자의 싸움이 아니었다.

EPISODE 32
제32화
이른 아침. 구로구 거리. 태식이 셔츠를 입고 서류 가방을 들고 걷는다. 표정이 단호하다.

9월 2일. 아침 7시 30분.

태식이 집을 나섰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태식아내
"오늘 뭔 일 있어? 넥타이까지 매고."
강태식
"좀 중요한 데를 가야 해."

검은 넥타이. 30년 영업이사 시절 항상 매던 것.

태식아내
"...조심해."
강태식
"걱정 마. 싸우러 가는 거 아니야."

거짓말이었다. 싸우러 가는 거였다.

* * *
중소기업 사무실 회의실. 태식이 탁자 맞은편에 앉아 있다. 상대방 두 명.

첫 번째. 오전 9시. 서진테크.

어제 해지 통보한 곳. 약속 없이 찾아갔다.

김대표
"강 이사님. 갑자기 어쩐 일로..."
강태식
"5분만 주십시오."

태식이 A4 한 장을 꺼냈다.

강태식
"BizSpread 도입 전. 광고비 월 380만. 전환율 1.2%."

종이를 뒤집었다.

강태식
"도입 후. 광고비 210만. 전환율 3.8%. 응답시간 5배 단축."
김대표
"시스템은 좋다니까요. 근데 박 대표님 전 회사에서—"
강태식
"횡령이요?"

김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태식
"제가 30년 영업했습니다. 사람 하나는 볼 줄 압니다. 박진호는 횡령할 사람이 아닙니다. 30년 경력을 걸고 보증합니다."

김 대표가 태식을 봤다. 5초. 태식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김대표
"...해지 철회하겠습니다."
* * *

두 번째. 한솔로지스.

로비 소파에서 40분을 기다렸다. 서류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고 움직이지 않았다.

상무가 나왔다.

한솔상무
"SEAN 건이죠? 윗선에서 좀 꺼려하시는 게 있어서."
강태식
"누구한테 들으셨습니까."
한솔상무
"...무역협회 모임에서. 최 대표라는 분이."
강태식
"글로벌트레이드 현재 상태를 아십니까? 동남아 전량 이탈. 직원 월급 3개월 밀림. 신용등급 C+. 그 회사를 그 지경으로 만든 사람이 최승재입니다."

상무의 표정이 바뀌었다.

태식이 A4를 꺼냈다.

강태식
"한솔로지스 물류비 월 1,200만 원 절감. 연간 1억 4,400만 원. 소문이 아니라 숫자입니다."
강태식
"제가 보증하는 사람이 사기꾼이면 — 제 30년이 거짓말인 겁니다."
한솔상무
"...갱신 건은 다시 올려보겠습니다."
* * *

세 번째. 오후 2시. IT유통사 '넥스트원.'

깔끔한 사무실. 유리벽 회의실. 태식이 혼자 앉아 있다.

미팅을 취소한 곳. 태식이 직접 전화해서 다시 잡았다.

넥스트원대표
"솔직히요. 업계 단톡방에 캡처가 돌았어요. 박진호 대표 횡령 해임이라고."

단톡방. 캡처. 소문이 이미지가 되어 퍼지고 있었다.

강태식
"횡령 기록, 검찰에도 법원에도 없습니다. 확인해보셔도 됩니다."

태식이 서류 가방에서 한 장을 더 꺼냈다. 데이터가 아니었다. 자신의 이력서였다.

강태식
"저 강태식이 30년 동안 어디서 뭘 했는지 다 적혀 있습니다. 이 사람의 사업 파트너입니다. 제 30년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넥스트원 대표가 이력서를 봤다. 유통업계에서 강태식이라는 이름은 — 들어본 적 있었다.

넥스트원대표
"...한번 만나보죠. 박 대표님이랑."
* * *
사무실. 저녁. 태식이 넥타이를 풀고 의자에 앉아 있다. 진호가 커피를 내밀고 있다.

저녁 7시. 태식이 돌아왔다.

넥타이를 풀었다. 셔츠에 땀 자국. 9월인데도 — 하루 종일 걸어다녔다.

박진호
"어떻게 됐어요?"
강태식
"서진테크 해지 철회. 한솔로지스 갱신 재검토. 넥스트원 미팅 재잡음."

3곳 중 3곳.

강태식
"해결은 아니야. 시간을 번 거지."

태식이 커피를 받았다.

강태식
"근데 진호야. 단톡방에 캡처가 돌고 있어.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로."

소문은 말로 퍼지면 느렸다. 이미지로 퍼지면 — 빨랐다.

◈ AI TEAM LEADER — THREAT UPDATE 평판 공격 현황: ▶ 유형: 허위사실 유포 (이미지 기반) ▶ 확산 채널: 업계 단톡방 (3~5개) ▶ 현재 영향: 고객 14곳 중 3곳 반응 ▶ 예상 확산: 1주 내 5~8곳 추가 도달 대응 옵션: A) 법적 대응 (명예훼손) B) 고객 직접 소통 (실적 기반) C) 재무 카드 (분식회계 공개)
박진호
"B로 간다."
강태식
"나도 그렇게 생각해."

태식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강태식
"오늘 돌아다니면서 느낀 건데. 소문은 소문으로 못 이겨. 숫자로 이기는 거야."
강태식
"우리 실적이 계속 올라가면 소문은 자동으로 죽어. 안 올라가면 — 사실이 되는 거고."

태식이 진호를 봤다.

강태식
"더 잘하면 돼."

단순한 말이었다. 하지만 — 진호에게는 그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다.

진호가 단말기를 켰다.

박진호
"팀장아. 내일 넥스트원 미팅 자료 준비해."
◈ AI TEAM LEADER 넥스트원 업종 분석 + 맞춤 제안서 작성을 시작합니다.

태식이 넥타이를 가방에 넣었다. 오늘 하루만 쓰고 30년을 꺼낸 넥타이.

진호는 그 뒷모습을 봤다. 말하지 않았다. 대신 — 커피를 한 잔 더 탔다.

태식이 받아 마셨다. 둘 다 말이 없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제32화 끝

제33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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