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편의점.
비가 왔다. 봄비. 진호는 사무실에서 나와 편의점으로 갔다. 습관이었다.
하은이 있었다. 계산대 뒤. 오늘은 책이 아니라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이름을 부르지 않았는데 주문을 알고 있었다. 매일 같은 걸 사니까.
하은이 컵라면을 꺼내주며 말했다.
진호는 잠깐 멈췄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하은이 자기 컵라면을 가져왔다. 너구리. 창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밖에 비가 내렸다. 편의점 유리창에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진호는 잠깐 생각했다. 잘 되고 있었다. 월 750만 원. 직원도 뽑았다.
겸손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매출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5년 전에도 잘 되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좋아하나. 생각해본 적 없었다. 해야 하니까 했다.
진호가 고개를 들었다.
담담하게 말했다. 동정을 구하는 톤이 아니었다. 사실을 말하는 톤이었다.
진호는 컵라면 국물을 마셨다. 뜨거웠다.
하은이 웃었다. 환하게가 아니라 — 살짝. 입꼬리만.
비가 세졌다. 편의점 천장 형광등이 지직거렸다.
진호는 하은을 봤다. 오래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 본 건 기억했다.
새벽에 혼자 일하면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음 날. 태식이 새 소식을 가져왔다.
진호의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속은 바뀌었다.
경쟁자. 예상했다. BizSpread가 돌기 시작하면 따라오는 놈이 있을 거였다.
밤. 사무실.
MIT. 삼성전자. VC 2억.
진호에게는 고시원에서 만든 단말기와 세무서에서 낸 사업자등록증이 전부였다.
체급이 달랐다.
진화. 서 있으면 잡힌다. 달려야 했다.
단말기를 닫았다. 창밖을 봤다. 관악구 밤거리.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경쟁자가 나왔다. 예상은 했지만 —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진호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놓지 않았다.
긴급 회의.
진호, 태식, 민준. 세 명이 사무실에 모였다.
진호가 화이트보드에 섰다.
화이트보드에 세 단어를 적었다. 제조. 물류. 유통.
회의 끝. 30분. 방향이 정해졌다.
2주 동안 밤낮없이 일했다.
민준이 제조업 모듈을 만들었다. 진호와 팀장이 물류·유통 모듈을 만들었다.
BizSpread v2.0. 업종별 맞춤 분석. 정확도가 94%에서 97%로 올라갔다.
0.8초. 1.2초에서 0.8초. 민준의 코드가 깨끗했다.
진호는 웃었다. 대표님. 아직 어색했다.
v2.0 출시 후 1주일. 구독이 폭발했다.
25곳 → 48곳. 온라인 유입이 3배 늘었다. 업종별 분석이라는 키워드가 먹혔다.
태식이 엑셀을 열었다.
1,650만 원. 전월 대비 2배.
진호는 숫자를 봤다. 다시 봤다.
4개월 전, 일당 12만 원. 지금은 월 1,650만 원.
태식이 처음 한 말을 되풀이했다. 방향은 맞다. 진호는 이 말이 좋았다. 축하보다.
밤. 사무실.
혼자 남았다. 민준과 태식이 퇴근한 후.
단말기를 켰다.
절반 가격. 하지만 v1.0 수준. 업종별이 없다.
지금은 이기고 있었다. 하지만 — 한현우에게 VC 2억이 있었다. 개발자를 더 뽑으면 따라잡힌다.
진호는 단말기를 닫고 사무실을 나섰다.
편의점에 갔다. 컵라면을 샀다. 하은이 있었다.
진호는 몰랐다. 자기 표정이 달라진 걸. 하은이 알아챈 거였다.
두 글자. 축하해요. 태식이 안 한 말을 하은이 했다.
컵라면을 먹고 나왔다. 비는 그쳐 있었다.
골목을 걸으면서 생각했다. 하은의 "축하해요"가 —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