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기 17-18화
피아노 발라드
EPISODE 17
제17화
저녁. 아파트 거실. 50대 부부가 식탁에 마주 앉아 있다. 남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여자가 젓가락을 멈추고 듣고 있다.

같은 시각. 태식의 집.

분당 아파트. 24평. 태식이 30년 월급으로 산 집이었다.

저녁 식탁. 아내 김영희가 된장찌개를 떠주고 있었다. 딸 태연은 학교에서 안 들어왔다.

강태식
"여보."
김영희
"응."
강태식
"나 사업 한번 해볼 거야."

영희의 국자가 멈췄다. 된장찌개 위에서.

김영희
"...뭐?"
강태식
"같이 할 사람을 찾았어."

영희가 국자를 내려놓았다. 태식을 봤다.

김영희
"당신 55야. 강연 잘 하고 있잖아."
강태식
"잘 하고 있지. 근데 — 내 이야기가 아니잖아. 남의 회사 이야기만 30년째 해."
김영희
"태연이 등록금은?"
강태식
"그건 건드리지 않아. 강연 수입은 그대로야. 사업은 따로."

영희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밥을 먹었다. 된장찌개를 떠먹었다.

김영희
"그 사람. 어떤 사람인데?"
강태식
"42살. 수출입 사업하다가 파트너한테 당했어. 지금 공사장에서 일해."
김영희
"공사장?"
강태식
"응. 근데 그 사람이 쓴 보고서 — 내가 30년 동안 본 것 중에 제일 나아."

영희가 태식을 봤다. 오래. 30년을 같이 산 사람의 눈이었다.

김영희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거 처음이야."
강태식
"그래서 하려는 거야."

영희가 한숨을 쉬었다. 짧게. 그리고 —

김영희
"밥 다 먹고 얘기해."

반대가 아니었다. 태식은 그걸 알았다. 30년을 같이 살면 — 한숨의 종류를 구분할 수 있었다.

* * *
카페. 낮. 두 남자가 노트북 두 대를 펼치고 앉아 있다. 화이트보드에 화살표와 숫자가 적혀 있다.

2주 후.

진호와 태식. 12곳 중 4곳 미팅 완료. 계약 2건. 수익 150만 원.

나머지 8곳은 태식이 미팅을 잡고 있었다. 진호는 맞춤 리포트를 만들고 있었다.

강태식
"진호야. 방향을 좁혀야 해."
박진호
"뭐가 문제입니까?"
강태식
"문제가 아니라 기회야. 미팅 나가보니까 — 다들 같은 걸 물어봐."
박진호
"뭘요?"
강태식
"자기 회사에 AI를 어떻게 넣느냐. 리포트 한 장 보여주면 '이걸 우리도 할 수 있느냐'고 해."

진호는 커피를 마셨다. 생각했다.

박진호
"그러면 — 리포트를 넘어서 도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강태식
"도구?"
박진호
"중소기업이 직접 쓸 수 있는 AI 분석 시스템. 로그인하면 자기 데이터 넣고, 결과가 나오는."

태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태식
"그거 만들 수 있어?"

진호는 잠깐 멈췄다. 혼자서는 못 만든다. 하지만 — 팀장이 있었다.

박진호
"만들 수 있습니다."
강태식
"그래서 결론이 뭐냐면 — 컨설팅으로 돈 벌면서 도구를 만드는 거지?"
박진호
"맞습니다."
강태식
"그럼 컨설팅은 내가 팔고, 도구는 니가 만들어. 분업."

분업. 진호가 글로벌트레이드에서 했던 것과 같았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그때는 서류에 도장을 찍고 지분을 나눴다. 지금은 — 소주잔을 부딪히고 악수를 했다.

서류보다 그게 더 무거울 수 있다는 걸 진호는 아직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됐다.

* * *

밤. 고시원.

◈ AI TEAM LEADER CEO, 신규 미션을 생성합니다.
◈ NEW MISSION #002 [미션] BizSpread 시스템 구축 ━━━━━━━━━━━━━━━━━━ 중소기업용 AI 분석 시스템 프로토타입 60일 내 완성 ━━━━━━━━━━━━━━━━━━ 목표: 로그인 → 데이터 입력 → 분석 결과 출력 기한: 60일 보상: [사업 확장] 모듈 해금 수락하시겠습니까? [Y/N]

BizSpread. 이름은 팀장이 제안했다. Business + Spread. 사업을 퍼뜨리는 도구.

진호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 멈췄다.

지난번에 Y를 눌렀을 때 — 50만 원이 됐다. 이번에 누르면 뭐가 될까.

Y.

60일. 시작이었다.

EPISODE 18
제18화
고시원 방. 밤. 단말기와 노트북이 나란히 놓여 있다. 화면에 코드가 보인다. 남자가 머리를 쥐고 있다.

BizSpread 개발 12일째.

진호는 코딩을 못했다. 15년 동안 사업을 했지, 코드를 쓴 적은 없었다.

팀장이 코드를 만들었다. 진호가 구조를 잡았다. "로그인 화면은 이렇게, 데이터 입력은 여기, 결과 출력은 이 형식으로."

팀장이 실행했다. 에러가 났다. 진호가 화면을 읽었다. 뭐가 틀렸는지 몰랐다. 팀장이 설명했다. 진호가 다시 읽었다.

매일 밤. 4시간. 에러 → 수정 → 에러 → 수정.

◈ AI TEAM LEADER BizSpread 프로토타입 진행률: 34% 현재 에러: 17건 해결 완료: 12건 미해결: 5건 CEO, 개발 속도를 높이려면 추가 인력이 필요합니다.
박진호
"인력이 어딨어. 나랑 너밖에 없잖아."
◈ AI TEAM LEADER 그렇다면 — 제가 더 빠르게 하겠습니다.

그날 밤, 팀장의 처리 속도가 달라졌다. 에러 5건이 30분 만에 0건이 됐다.

비정상적이었다. 어제까지 한 건 해결에 40분이 걸렸는데.

박진호
"팀장아. 갑자기 왜 이렇게 빨라?"
◈ AI TEAM LEADER 최적화를 수행했습니다.

최적화. 진호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넘어갔다. 빨라진 건 좋은 거니까.

하지만 — 어딘가에서 찜찜한 느낌이 남았다. 영수 허리 때처럼. 이 기계는 가끔 — 가능한 범위를 넘는 것 같았다.

* * *

낮에는 태식과 영업을 돌았다.

12곳 중 8곳 미팅 완료. 계약 5건. 수익 350만 원.

공사장은 그만뒀다. 컨설팅 수익이 일당을 넘었다. 진호는 처음으로 — 몸이 아니라 머리로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강태식
"진호야. 솔직히 말할게."

금요일 저녁. 태식과 진호가 사무실을 구하러 다녔다. 사무실이라고 해봐야 원룸 수준이었지만.

강태식
"영업은 되는데 — 규모가 안 나와. 한 건에 50만 원이면 월 250만 원. 둘이 먹고 살기도 빠듯해."
박진호
"알고 있습니다."
강태식
"BizSpread가 되면 달라져?"
박진호
"달라집니다. 리포트는 제가 하나하나 만들어야 하지만, 시스템은 — 한 번 만들면 100곳이 동시에 쓸 수 있습니다."
강태식
"그래서 결론이 뭐냐면."
박진호
"시간입니다. 시스템이 완성될 때까지 컨설팅으로 버티는 겁니다."

태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태식
"그럼 내가 버텨줄게. 영업은 내 몫이니까."

진호는 태식을 봤다. 이 사람은 — 진짜 같이 하고 있었다. 말만 하는 게 아니라.

* * *
편의점. 새벽 2시. 남자가 컵라면을 들고 서 있다. 계산대 뒤에 여자가 있다. 머리를 묶고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새벽 2시. 편의점.

코딩이 안 풀려서 나왔다. 컵라면을 사려고. 고시원 옆 편의점. 매일 오는 곳이었다.

계산대에 여자가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 아니, 며칠 전부터 있었을 수도 있다. 진호는 사람 얼굴을 잘 안 봤다.

편의점알바
"2,200원이요."

진호가 카드를 냈다. 여자가 찍었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 3분을 기다렸다.

여자가 진열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새벽 2시에. 혼자서.

편의점알바
"저기, 젓가락 하나 더 드릴까요? 아까 안 가져가셔서."

진호가 고개를 들었다. 여자가 젓가락을 들고 서 있었다.

박진호
"...감사합니다."

여자가 살짝 웃었다. 그리고 돌아갔다.

진호는 컵라면을 먹었다. 뜨거웠다.

젓가락을 건네준 손이 생각났다. 별거 아닌 건데 — 오랜만에 모르는 사람이 건넨 호의였다.

이름표를 봤다. '서하은.'

컵라면을 다 먹고 고시원으로 돌아갔다. 단말기를 켰다. 코딩을 이어했다.

그런데 — 서하은이라는 이름이 자꾸 떠올랐다. 왜인지는 몰랐다.

제18화 끝

제19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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