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각. 태식의 집.
분당 아파트. 24평. 태식이 30년 월급으로 산 집이었다.
저녁 식탁. 아내 김영희가 된장찌개를 떠주고 있었다. 딸 태연은 학교에서 안 들어왔다.
영희의 국자가 멈췄다. 된장찌개 위에서.
영희가 국자를 내려놓았다. 태식을 봤다.
영희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밥을 먹었다. 된장찌개를 떠먹었다.
영희가 태식을 봤다. 오래. 30년을 같이 산 사람의 눈이었다.
영희가 한숨을 쉬었다. 짧게. 그리고 —
반대가 아니었다. 태식은 그걸 알았다. 30년을 같이 살면 — 한숨의 종류를 구분할 수 있었다.
2주 후.
진호와 태식. 12곳 중 4곳 미팅 완료. 계약 2건. 수익 150만 원.
나머지 8곳은 태식이 미팅을 잡고 있었다. 진호는 맞춤 리포트를 만들고 있었다.
진호는 커피를 마셨다. 생각했다.
태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호는 잠깐 멈췄다. 혼자서는 못 만든다. 하지만 — 팀장이 있었다.
분업. 진호가 글로벌트레이드에서 했던 것과 같았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그때는 서류에 도장을 찍고 지분을 나눴다. 지금은 — 소주잔을 부딪히고 악수를 했다.
서류보다 그게 더 무거울 수 있다는 걸 진호는 아직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됐다.
밤. 고시원.
BizSpread. 이름은 팀장이 제안했다. Business + Spread. 사업을 퍼뜨리는 도구.
진호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 멈췄다.
지난번에 Y를 눌렀을 때 — 50만 원이 됐다. 이번에 누르면 뭐가 될까.
Y.
60일. 시작이었다.
BizSpread 개발 12일째.
진호는 코딩을 못했다. 15년 동안 사업을 했지, 코드를 쓴 적은 없었다.
팀장이 코드를 만들었다. 진호가 구조를 잡았다. "로그인 화면은 이렇게, 데이터 입력은 여기, 결과 출력은 이 형식으로."
팀장이 실행했다. 에러가 났다. 진호가 화면을 읽었다. 뭐가 틀렸는지 몰랐다. 팀장이 설명했다. 진호가 다시 읽었다.
매일 밤. 4시간. 에러 → 수정 → 에러 → 수정.
그날 밤, 팀장의 처리 속도가 달라졌다. 에러 5건이 30분 만에 0건이 됐다.
비정상적이었다. 어제까지 한 건 해결에 40분이 걸렸는데.
최적화. 진호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넘어갔다. 빨라진 건 좋은 거니까.
하지만 — 어딘가에서 찜찜한 느낌이 남았다. 영수 허리 때처럼. 이 기계는 가끔 — 가능한 범위를 넘는 것 같았다.
낮에는 태식과 영업을 돌았다.
12곳 중 8곳 미팅 완료. 계약 5건. 수익 350만 원.
공사장은 그만뒀다. 컨설팅 수익이 일당을 넘었다. 진호는 처음으로 — 몸이 아니라 머리로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금요일 저녁. 태식과 진호가 사무실을 구하러 다녔다. 사무실이라고 해봐야 원룸 수준이었지만.
태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호는 태식을 봤다. 이 사람은 — 진짜 같이 하고 있었다.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새벽 2시. 편의점.
코딩이 안 풀려서 나왔다. 컵라면을 사려고. 고시원 옆 편의점. 매일 오는 곳이었다.
계산대에 여자가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 아니, 며칠 전부터 있었을 수도 있다. 진호는 사람 얼굴을 잘 안 봤다.
진호가 카드를 냈다. 여자가 찍었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 3분을 기다렸다.
여자가 진열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새벽 2시에. 혼자서.
진호가 고개를 들었다. 여자가 젓가락을 들고 서 있었다.
여자가 살짝 웃었다. 그리고 돌아갔다.
진호는 컵라면을 먹었다. 뜨거웠다.
젓가락을 건네준 손이 생각났다. 별거 아닌 건데 — 오랜만에 모르는 사람이 건넨 호의였다.
이름표를 봤다. '서하은.'
컵라면을 다 먹고 고시원으로 돌아갔다. 단말기를 켰다. 코딩을 이어했다.
그런데 — 서하은이라는 이름이 자꾸 떠올랐다. 왜인지는 몰랐다.